LEE EUI 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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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날 물으니 열을 답하네>
3rd Solo Exhibition_Seongnam Art & Culture Education Center Library2
하날물으니열을답하네_포스터_최종_1.jpg
포스터 디자인. 유지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순간
 
1. 서로 믿고 돕는 정다운 이웃이 된다.
1. 예절을 지키고 올바르게 살아간다.
1. 알뜰하게 생활하며 열심히 일한다.
1. 문화유산을 가꾸고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1. 내고장을 사랑하며 새 시대를 열어간다.
 
 위 다섯 문장은 경기도 성남시 희망대공원 내 위치한 시민헌장비에 새겨진 실천 내용으로, 성남 시민들의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실천을 다짐하는 문구이다. 성남 시민들의 이상적인 시민성과 도시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던 기념비는 공교롭게도 도시 너머 이면의 현상들을 재조명하게끔 하는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전시 《하날 물으니 열을 답하네》에서 이의석은 시민헌장비가 놓여진 성남의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지역 안에 내재되어온 도시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미묘하고도 기이한 현상들에 주목한다. 성남시 행정 구역은 수정·중원구, 그리고 분당구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분당’이라는 지역은 성남시 내에서 독특한 정체성을 갖는다. 분당은 본래 성남시의 한 지역에 속해있는 부분이지만, 성남시와의 선 긋기를 통해 별개의 독립된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그간 분당은 안온한 생활의 터전으로, 유수의 교육 인재를 배출해 내는 학군으로, 각종 IT와 첨단산업의 중심으로 자리하면서 다각도로 성장해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공공 차원의 도시 계획과, 민간 차원에서의 대내외적 구별짓기 전략이 내재되어 있다.
 분당과 성남의 구분 짓기는 동네의 위치와 주거 형태로 인해 생겨나는 미묘한 위계들과 더불어 상권과 계층의 분할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게 되었다. 무릇 ‘분할’이라는 것은 공통의 것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나눔’의 의미와는 다르다. 분할에는 누군가는 자신의 몫을 가지게 되는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는 몫을 가지지 못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분할이 우리의 감각계-시공간-에 작동하는 순간, 구분 짓기는 곧바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1차적으로 감각계의 분할은 직업, 학력, 주거 등과 같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형태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발화할 수 없는 사람 등과 같이 분할은 실존적 차원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이의석의 작업은 이와 같이 분할된 질서 속에서 미처 셈해지지 못했던 대상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령 도심 굴다리 밑에 거주하는 노숙인들,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윤락가들이 그것이다. 이의석은 “우리를 연결하면서 동시에 단절하고 있는” 대상들에 대한 관심과, 그럼에도 “그 경계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을 찾아 헤매며 그 과정에서 채집한 이미지와 소재들로부터 차용된 오브제들을 작품으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대다수의 오브제들은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목적 혹은 쓰임의 기능으로부터 해방되어 전혀 다른 역할로 기능한다. 언뜻 극사실적인 듯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무언가 어설픈 작품들 간의 배치는 오묘하고도 키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분할된 감각계의 경계 속에서 두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식은 하나의 기념비적인 무언가를 세우는 것이다. 그것은 ‘신목’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기념비’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곧바로 보이는 3개의 작업 < 무너지는 것을 위한 기념비 >(2023), < 하날 물으니 열을 답하네 >(2023), < 신목(神木) >(2023)은 존재했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대상을 일깨우는 역할로 작동하며 시민헌장비와 대구를 이룬다. 각기 다른 형상을 지닌 수직적 조형물들을 마주할 때 생겨나는 이질적인 감각은 두 세계의 연결 과정에서 일어나는 충동적 에너지의 발현과 유사성을 갖는다.
 이의석의 작업은 모듈화되어 각기 조각들은 하나의 완결성을 지닌 단일한 전체로 존재할 때도 있지만, 필요에 따라 전체의 한 부분으로 포섭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조립된다. 그리하여 그의 조각들은 여전히 현존하지만 미완의 임시성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역설을 만들어내게 된다. 가령 < 신목(神木) >(2022)의 하단 부분을 지탱하던 목재 프레임은 이번 전시에서 < 하날 물으니 열을 답하네 >(2023)의 한 부분으로 재기능하고, < 무너지는 것을 위한 기념비 >(2021)는 이번 전시에서 동명의 이름으로 다른 오브제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형상으로 등장하듯이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은 언제나 잠재적인 상태에 머물며 그때의 쓰임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다시 등장과 사라짐의 반복. 기약 없는 조각들의 왕래. 조립과 적층, 그리고 해체.
 전시 《하날 물으니 열을 답하네》는 우리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졌다. 물음은 단순했으나, 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윽고 보이지 않던 것들은 잠시 동안 자신의 자리를 갖는다. 들리지 않던 것들은 미세한 소음을 불러일으킨다. 그 결과, 여전히 존재하지만 셈해지지 못하는 이들은 찰나의 부름으로 잠시나마 명명(命名) 되었다. 이들은 어딘가에 있을 ‘정다운 이웃’이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자들이다. 물음은 이내 공명을 불러일으켜 다른 물음으로, 그리고 다른 대답으로 우리 주변을 맴돈다.
 
(글. 장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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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사진. 정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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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것을 위한 기념비 >(2023)_혼합매체_가변설치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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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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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목(神木) >(2023)_혼합매체_가변설치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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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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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국기 >_만국기_가변설치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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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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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날 물으니 열을 답하네 >_혼합재료_가변설치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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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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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 >_합판 위에 사진_122x244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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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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